[서신] 사랑하는 남편 토시로에게.

댓글 19개
[서신] 사랑하는 남편 토시로에게.

부드러운 겨울이 가고, 산비탈 푸른 나무들 위에 벚꽃이 무성하게 핀 모습이 마치 보드라운 분홍 구름처럼 보입니다. 봄이 오니 하시모토 가문이 당신을 앗아간 겨울날이 생각납니다. 지금 꽃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그날은 눈송이가 떨어졌지요.

이토록 가까이 있음에도 지금의 우리 "주인"들이 허락할 때만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이상하네요. 주인들이 당신의 능력을 귀중히 여겨 곧 저희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당신이 준 선물은 딸아이의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하시모토를 위해 벼려내는 검은 그 검만큼 날카롭지 않기를, 그리고 놈들의 추악함에 걸맞은 검이기를 바랍니다.

야마가미 도파의 대장간은 아직도 굳게 닫혀있고, 가을에 뵌 후로 저희는 위층으로 이사하였습니다. 많은 면에서 당신과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드네요. 그런가 하면, 당신의 부재가 더 선명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이곳에서 뜨거운 다마하가네를 두들기는 망치 소리, 강철에서 울려오던 노래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목소리, 당신이 검에 야키바츠치를 바르며 흥얼거리던 노랫소리, 검이 용광로에 들어갈 때 불이 타닥거리던 소리, 그리고 검을 물에 식힐 때 나던 소리도 이젠 없지요. 가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 듯하지만, 매번 바람 소리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더는 여기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지금, 꽃잎이 흩날리는 따사로운 바람처럼 마음을 가볍게 할 편지를 보냅니다. 이곳의 평화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을 쓰는 와중에도, 이 편지가 당신과 저에게 약간의 평화를 가져다줄지도 모르겠습니다.

8년 전 당신이 마지막으로 집에 왔던 때 이후로 변하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이치코가 고잔 라멘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 조리법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당신도 분명 기뻐하겠지요. 그리고 흑마늘 기름은 언제나처럼 맛이 좋습니다. 오늘은 벚꽃 구경으로 사람들이 몰려 북적였지요. 유이의 개 모찌는 나이를 먹었지만, 도예 학원의 간판에는 아직도 모찌의 예전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 마을처럼 고풍스러운 옛 마을을 즐겨 찾는 관광객들 덕분에,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들도 아직 대부분 남아있답니다. 관광객들은 고양이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락실이나 당신은 아직 한 번도 못 본 새 백화점에서 돈을 쓰곤 하지요. 그 후 낮의 방문객들은 기념품에 만족스러워하며 밤이 되기 전에 기차를 타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등불이 켜지면 하시모토 패거리가 닫힌 상점의 문을 두드리고, 다른 이들의 땀이 어린 돈에서 자기들의 "몫"을 떼어가 그들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의 장소인 토라 노 스미카에 써버리죠.

시마다 성은 여전히 영광스럽게 우뚝 선 채 자애로운 신을 기다리는 굳건한 석조 사원처럼 우리 도시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검을 만들고 휘두르는 당신과 저도 잘 알듯이, 시마다 가문의 성은 강인한 바위와도 같았지만 그들은 신들이 아닌 인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범죄자들이었지요. 하지만 시마다 가문은 명예와 충절이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관계를 단단하게 벼려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 제 머릿속은 시마다 가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따르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지만, 그 요구에 따르고 싶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우리를 진실되게 이끌고 존중해주는 것으로 보답했고요. 당신도 알다시피, 저희 가문의 여인들은 마을의 소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여우 신사를 돌보는 영예를 맡아 왔습니다. 하지만 제 영혼이 검을 염원하고 제게 검술의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닫자, 시마다 가문은 다른 이들을 전부 제쳐두고 저를 그들의 검성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카네자카가 그저 권력의 중심지가 아니라, 그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시마다 가문이 베풀었다면, 하시모토 가문은 빼앗아갈 뿐입니다. 빼앗는 이가 있다면, 빼앗기는 이도 있기 마련이죠. 그리고 하시모토 가문은 이 나라의 거의 모든 도시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저희는 전혀 특별하지 않지요. 언젠가 우리를 전부 착취하고 나면, 말라비틀어진 카네자카를 뒤로한 채 다른 도시로 눈을 돌릴 것입니다.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이 우리 도시에 남긴 흔적이 눈에 들어옵니다.

카네자카의 오래된 지역이 겉보기에는 그대로이지만, 하시모토의 잔인한 손아귀 아래 시달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제 어머니 같은 산을 바라보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나무, 바람, 바위가 아니라 마천루와 간판만이 오만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카네자카와 저 모두 산과 시마다 가문이 나타내는 옛 방식의 삶과 도시와 하시모토 가문이 나타내는 새롭고, 날카롭고, 냉담한 방식의 삶 사이에 걸쳐 있습니다. 하시모토가 당신을 "보살피고" 있는 이유가 당신의 기술뿐만이 아니라, 저를 억류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당신과 저 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그들을 위해 이 도시와 제가 존중해 마지않는 마을 사람들의 평화를 유지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지요. 현재 주인들을 거역했다가는 당신과 제 친구들이 위험해질 것이기에, 저는 그들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예전에는 시간이 지나면 하시모토도 안일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억압이 필요 없는 정직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을 거라고요.

아무리 충직한 개도 계속 맞다 보면 주인을 무는 법입니다. 그리고 카네자카 사람들은 원대한 마음을 품고 있지요. 저희는 지쳐가고 있습니다. 놈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사람들의 불만은 끓어오르고 있지요. 돈을 제때 내지 못하면 더욱더 악랄하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하시모토 가문의 분노를 한층 더 사고 말았습니다.

지난 몇 달 간, 하시모토가 밀수한 화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시모토 패거리들도 돌아가는 길에 심하게 구타를 당하거나 강도에게 공격당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가장 무모한 이들은 밝고 눈에 띄는 색으로 글귀를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금세 덧칠되기는 하지만요.

그 멍청이들은 하시모토와의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려 하고, 그에 대한 반응은 당신이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 자경단은 폭력의 파도 앞에 굳세게 맞서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빠르게 공격한 다음 그보다 더 빠르게 숨어버리고, 카네자카의 선량한 주민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고초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과 제 친구들이 순종하도록 만든다는 제 과업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어렵고 중요한 것이 되고 있지요. 가끔은 지금 제가 이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당신은 자격 없는 짐승들을 위해 아름다운 검을 만들고 있죠. 한때 소지로 시마다의 자손들을 가르쳤던 저는 제 친구들에게 칼끝을 겨누어야 합니다. 이 마을의 아이들은 잔인하고 무지몽매한 하시모토가 정하는 대로 자라나고 있죠... 우리의 딸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 도시는 이제 안전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카네자카에 산책을 나갈 생각이지만, 그저 당신 곁에서 걷던 기억을 떠올리고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려는 게 아닙니다. 제 조상들의 테츠잔 신사에 바칠 공물을 만들었거든요. 도예 학원에서 만든 청록색 유약을 바른 그릇이죠. 이치코가 육수를 담아주었어요. 이웃은 밥을 한 숟가락을 줬지요. 켄타에게서는 우리 딸이 가장 좋아하는 팥 모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사케도 넉넉히 담았어요. 그리고 사실 저도 한 잔 마셨답니다.

여우 신께 우리 모두에게 싸움을 계속할 힘과 지혜를 내려달라 부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해가 지면, 오래 전 저희 약혼식에서 당신이 주신 검을 가지고 거리를 순찰할 것입니다. 제 마음을 채워 주고 또 깨뜨리는 그 거리를요. 자칭 "수호자"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들을 막지 않으면 거짓의 불길을 일으켜 우리 모두를 집어삼키겠죠.

당신과 저 모두가 당신의 검처럼 강하고 날카로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시모토를 진심으로 따르지는 못한다 해도, 제가 그래야 하듯 당신도 그들에게 복종하며 겉으로는 존중하는 척하세요.

마음을 가볍게 하는 편지라고 약속한 대로, 당신이 이곳에 있었다면 제게 했을 말을 전하며 이 편지를 끝내겠습니다. "키츠네께서는 꼬리 중 하나만 튕기셔도 사람의 운을 바꾸실 수 있지." 그분께서 꼬리 아홉 개를 전부 튕겨 저희들이 갈구해 마지않는 행운을 불러다 주시기를.

아사

댓글 19개